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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빗의 멋' 이어줄 국내 유일의 장인
제목 '참빗의 멋' 이어줄 국내 유일의 장인
작성자 죽향참빗 (ip:)
  • 작성일 2011-01-05 23: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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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원류를 찾아서(4) '참빗의 멋' 이어줄 국내 유일의 장인

<도지정 무형문화재 고 행 주 장인>


"수십 번 손이 간 참빗은 아낙네의 머리를 곱게 빗기며 자신의 몫을 다한다"


 

담양에서 평생 참빗제작에 매달려온 고행주 옹. 플라스틱 빗에 밀려 사양길에 접어든 참빗의 현실이 안타까운 고옹은 무형문화재에 대한 정부의 경제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머릿속을 근질근질하게 하는 '이'와 함께 살던 시절, 참빗은 귀찮은 동숙자들을 몰아내는 데 쓰이는 유일무이한 도구였다. 머릿속을 박박 긁어대면 검은 머릿니와 서캐가 쏟아졌고 손톱 밑에서 '찍찍' 파열음을 남기며 사라지는 순간, 가려움에서 해방된 희열을 느껴본 시절도 그리 멀지 않다.

참빗은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내릴 때도 제 몫을 톡톡히 했다. 경대 앞에서 동백기름을 손바닥에 부어 머리에 바르고 이마에서 정수리로 가르마를 탄뒤 쪽진 머리를 빗을 때에도 참빗만한 게 없었다. 참빗으로 긴 머리를 양편으로 빗어 내리면 반질반질 윤기가 돌았다.

빗은 또 옛 사람들에게 정절과 사랑, 건강의 상징이기도 했다. 사랑의 징표로 준 빗을 잃어버리면 여인이 정조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또 빗을 주면 혼인을 허락하는 것과 같았다.

대나무로 손재주를 부려 만든 참빗은 지난 60년대 말까지 우리 여인네들의 필수품이었다. 집안 식구들이 수십년동안 쓰지만 고부(姑婦)간에 대물림할 정도로 단단했다.

그러던 참빗이 이가 사라지고, 퍼머의 등장으로 비녀가 기능을 다하면서 참빗도 덩달아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담양군 담양읍 향교리에 추억의 참빗을 만드는 참빗장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담양읍내를 가로지르는 관광천을 지나 죽녹원이 위치한 향교리 생기마을에서 6대째 참빗만을 만들어온 '참빗장인' 고행주(73ㆍ도지정 제15호 무형문화재 보유자)씨.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참빗 무형문화재다. 60년 세월을 고스란히 참빗 만드는 일에만 쏟아부은 외길인생이다.

"10살때 어버지 심부름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해서 60년이 넘었소. 생전 다른 일은 해본 적 없이 한 길을 걸어왔지만 후회한 적은 없지만 플래스틱 빗에 밀려 사향길에 접어든 것이 안타까울 뿐이여…."

일제시대땐 생기마을서만 300여호 이상이 참빗을 만들었고 중국은 물론 몽고까지 수출할 정도로 '담양참빗'은 전성기를 누렸지만 해방이후 서구문물이 들어오면서 퍼머와 질좋은 이약, 나일론, 그리고 플래스틱 빗의 등장으로 쇠퇴기를 걷고 있는 현실이 고씨는 못내 아쉽다.

"요새 사람들 간편한 것 좋아해 푸라스틱 빗을 많이 사용하는디, 정전기 나고 피부에도 해로워. 참빗으로 곱게 머리를 빗어야 품위가 나고 멋도 있어서 지금도 참빗만을 고집하는 사람도 많아."

편리를 좇는 세태로 인해 소비처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이따금 찾는 애호가들을 기다리며 참빗을 만들고 있는 고씨는 "예전에 비하면 수입은 말할 것이 줄어들었지. 그래도 "이것으로 풍족하지는 않았어도 6남매를 올곧게 키웠으니 족하다"며 만족해 하고 있다.

참빗은 워낙 손이 많이 가는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참빗 하나만을 만든다면 완성하기 어렵다.
참빗 하나가 모양을 갖추려면 백번도 더 손이 가기 때문에 공정별로 나눠 15일에서 20일 단위로 500개씩, 한달에 평균 1000개씩을 만들 수는 있지만 항상 그렇게 만들지는 않는다. 주로 담양 5일장을 겨냥해 수요량을 측정하고 남은 참빗은 가끔 전화로 1~5개씩 주문하는 고객들에게 택배로 우송한다.

"수요량이 워낙 적은 것이 문제여. 도에서 지원하는 월60만원이 없으면 생활이 빠듯해. 다행히 그전에 벌어놓은 것이 좀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밥먹기도 어려울 것이여."

그래서 이수자인 아들과 딸, 며느리에게도 선뜻 권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씨는 "아직도 전수관은 고사하고 변변한 작업장 하나 없어서 외지에서 구경하겠다고 오면 부끄럽다"고 털어놓았다.

고씨는 특히 "도지정 무형문화재 가운데는 나같은 고령자들이 많은데 의료급여 혜택이 없어서 아파도 쉽게 병원을 가지 못한다"며 정부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지원이 전혀 없어도 나는 참빗 만드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어. 이 세상에 참빗장은 나 한 사람 뿐인데 내가 안하면 누가 참빗의 멋을 이어갈 것이여…." 푸념섞인 넋두리를 늘어놓았지만 그는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국내 유일의 참빗장임이 분명했다.

 



◇ 참빗이란


'빗은 형태에 따라 빗살이 굵은 것을 '소(梳)' 가는 것을 '비' 라고 한다. 빗살이 성긴 얼레빗(월소), 빗살이 가늘고 촘촘한 참빗(진소), 머리를 마지막으로 정갈하게 다듬는데 쓰인 면빗(면소)등으로 나뉜다. 참빗은 대소ㆍ중소ㆍ어중소ㆍ밀소 따위가 있는데 '대전회통'에 의하면 외공장으로 소장은 경상도 2명, 전라도 1명, 강원도 6명 등이 있었는데 전라도에서는 예로부터 담양ㆍ영암ㆍ나주 등지가 산지로 이름 있었다

담양의 죽물은 예로부터 유명하다. 빗의 경우 1917년에 설립된 진류계가 그 주축을 이루어 뒤에 1922년 담양산업조합으로 발전했다.
담양 참빗은 대소ㆍ밀소ㆍ써울치ㆍ음양소ㆍ호소 따위가 있다. 재료는 담양 일대에서 생산되는 왕대를 사용하며 매기용 재료는 영암에서처럼 소뼈를 쓰지 않고 뿔때죽나무, 먹감나무(흑포)등이 사용된다. 기능보유자 고행주는 할아버지 고학진(1867~1936년)이 일제강점기때 빗조합의 진소계원으로 활동했으며 아버지 고제업(1901~1979년)을 이어 기능을 전수하고 있다.


 

 


◇ 참빗 이렇게 만들어요


①참빗은 3~4년생 왕대를 사용한다. 마디마디를 잘라 대 겉과 속을 구분(배를 뜬다)뒤, 4등분한다(대 때린다). 이후 겉과 속을 세밀하게 분류하고(아시배 썬다) 일정한 폭을 유지하며 빗살을 만든다(조룸썬다).

 

②껍질을 살짝 베껴낸 것(비금대)으로 정교한 빗살을 만든다. 3가닥 기둥(삭대)에 삼합살(세줄의 실)을 걸어 빗살을 만든다. 고급빗은 120개 빗살을 만들지만 일반빗은 100개 정도면 족하다. 7㎝정도 길이가 만들어지면 일단 작업을 끝낸다(빗을 맨다).

 

③이것을 염색해(매기 지른다) 등대(빗중심에 붙인 것)를 붙인다. 아교(아교 50%, 소맥분 50%)를 이용해 접착한 뒤 따뜻한 방에서 7시간정도 건조한 뒤 삭대를 빼고 등대 밑 빗살의 높낮이를 고른다(등밑친다).

 

④양쪽 빗살 끝을 45도 각도로 깎고 사포를 이용해 빗살끝을 매끈하게 만든다. 특히 빗살 날끝의 들쭉날쭉한 곳은 둥그런 나무에 사포를 붙인 '한대'로 문지른다. 이후 빗살 간격 고루기 작업(얼잡는다)을 마친뒤 빗에 참기름을 말라 광(光)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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